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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의 중립외교 정책

선조는 임진왜란이 끝나고도 9년이나 더 재위한 다음 1608년에 세자 광해군이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광해군은 유능한 왕자로서 임진왜란 당시 항일의 공로도 매우 컸으나, 혈통상으로는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에 비해 불리한 조건에서 왕위에 올랐다. 선조의 적자가 아니라는 것이 광해군시대를 어렵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광해군을 추종한 북인은 원래 동인 중에서 이황 문인을 제외한 여러 파벌이 연합한 붕당이어서 서경덕과 조식의 문인이 중심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쉽게 분열될 소지를 가지고있었다.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영창대군의 혈통을 존중하면서 훈척의 정치 간여에 비판적 입장을 지닌 명분주의자가 소북을 형성하였고, 광해군의 혈통상 문제보다는 항일의 공적과 능력을 존중하여 부국강병을 추구하려는 현실주의자..

금융 2022. 11. 2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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